칼럼 에세이

보람 있게 사는 길 (천관우)
  • 날짜 : 2017-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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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국회의원이나 한번 나가보지』. ㅡ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가끔 듣는다. 신문 잡지에 더러 이름이 오르고 하니까, 소위 유명인 축에 끼워 주느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문기자나 제대로 해 보아야 하겠는데, 그것도 쉽지 않네 그려』. ㅡ 건성으로 이렇게 대답을 하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쓰름한 느낌을 가누는데 한참이 걸린다.

  나에게 국회의원 될 역량도 포부도 없는 것은 내가 잘 안다. 그러나 아무튼 국회의원 해보라는 기대라도 걸어주는 옛정이 고맙고, 또 그 친구들 말이 뻔히 「지나가는 말」인줄 알면서도 듣기에 과히 거슬리지 않다가, 다음 순간에는 좀 씁쓸해지는 것이다. ㅡ 신문기자는 아무래도 국회의원만 못한 것이로구나.

  국회의원 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허허 하고 웃을 것이고 또 웃어주어야 할 일이지만, 신문기자를 앞에 놓고 그 국회의원 한번 나가보라니, 이건 신문기자를 무얼로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느 구석인가에 있기에 씁쓸해지는 것일게다.

  그야 꼭 신문기자 하겠다 해서 이 세상에 나왔다고 공언을 할 만큼 기자생활에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어찌하다가 신문기자가 되었고, 되고 보니 더러는 실망도 하지만 더러는 내 나름으로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그렇게 지나다 보니 신문기자 일 할 수 있는 날까지라도 정성껏 해보리라는 마음을 먹게 된 것 뿐이다.

  

  인생의 방향을 내가 잡은 것이라기보다는 어찌어찌하다가 이렇게 신문기자로 인생의 방향이 반쯤 잡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나로서는 내 직업에 대해서 할 말이 별로 없다.

  ㅡ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제 자리에 서고, 마흔에 動搖하는 일이 없게 되고, 쉰에 天命을 알게 되었다.

는 어느 성현의 술회는 아무나 자신에게 비춰보기도 어려운 일이겠고,

  ㅡ 열살 때는 菓子에 動하고 스물에는 愛人에 동하고 서른에는 쾌락에 동하고, 마흔에는  野心에 동하고, 쉰에는 貪慾에 동하니, ···叡智는 어느 때나 추구하나.

고 한 「에밀」의 한 토막이 훨씬 실감있게 느껴지는 凡人으로서는 아직 반쯤은 남았다고 믿는 나의 인생을 되도록이면 보람있는 쪽으로 이끌어가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 밖에 있을 수가 없다.

  

  새삼스럽게 부귀영화를 꿈꾸어 본대도, 홍진에 썩은 名利를 비웃어 본대도 이제 별도리 없는 한낱 신문기자다. 그러나, 다른 길로 가기가 어렵다 해서 주어진 일이나 제대로 하겠다는 것만은 아니라고, 나 자신을 타일러 본다. 또 기가 죽어서야 일이 되겠는가해서 억지로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을 타일러 본다.

  다만 신문기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신문기자 노릇을 하고 있느냐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기자로서 할 일을 다는 못해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이나 하고 있다면 정말 국회의원이 부럽지도 않을 것이다. 기자로서 할 일을 부끄러울이만큼 못다하고 있다면···그때는  인생의 방향을 돌려본들 거기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샘터>·1970.6)

<천관우 산문선>, 심설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