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세이

언론인이 되려는 젊은이에게 (박권상)
  • 날짜 :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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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상 언론학』, 2015, 도서출판 상상나무  

언론인이 되려는 젊은이에게


 사람이란 누구나 타고난 독특한 재주가 있는 법이고 사람마다 지능이나 체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습과 경험을 통해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의미에서 누구나 훈련과 노력에 따라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민완기자가 될 수 있고 탁월한 논객이 될 수 있고 통찰력을 갖춘 명주필이 될 수 있고 수완 있는 발행인의 길도 열린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그렇듯 간단치 않고 쉽지도 않다. 특히 언론인이 되는 데는 타고난 재주와 더불어 철저한 훈련이 요구된다. ‘언론’이란 아마도 가장 어렵고 가장 고된 직업의 하나이고 현대사회에서 맡은 역할 책임이 워낙 무거운 전문 직업이기 때문이다.


 중세 보로니아에 처음 대학이 생긴 것은 세 가지의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에서 유래했다. 첫째는 성직자로서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직업이고, 둘째는 의사로서 사람의 몸을 돌보는 직업이며, 셋째는 변호사로 사람의 행동을 다스리는 직업이다. 이 3대 전문 직업은 당시 사회에 절대적 권위를 갖는 것이었는데, 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공통된  두 가지의 필요불가결한 직업적 요수가 있었다.


 첫째는 고도의 직업적인 지식과 기량이다. 그것은 장기간의 학습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두 번째로 공통된 덕목은 철두철미 남에게 봉사하는 정신, 여기에는 드높은 직업윤리와 엄격한 책임의식이 동반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인격적인 품성과 도덕성에 기초하는 것이며 자아의 이익추구에 앞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퍼블릭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인격적 바탕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물질적 보수만을 염두에 두고 평생을 바치는 직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인도주의적 자기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


 나는 현대사회에서 언론이야말로 이상 세 가지 전문 직업을 포괄하고도 남음이 있는 소중한 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정신생활, 사회생활을 통틀어 다른 어느 전문직업보다도 더 막중한 책임을 가진다. 이렇듯 언론인은 현대판 성직자, 의사, 변호사, 군인의 임무를 조금씩은 모두 대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두 개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하나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실존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언론이 선택적으로 취재, 재구성해서 제공하는 ‘유사의 새계’인데, 대부분 사람한테 대부분의 일은 언론이 제공하는 ‘유사의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우리 머리에 도달한 어느 한 ‘사실’은 실제로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우리한테는 ‘사실’이 되고 만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있다고 전하면 있는 것이 되고 없다고 말하면 없는 것이 된다. 실제로 사실 유무와는 관계가 없다. 엄청난 언론의 마술이고, 우리는 좋든 싫든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언론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다.


 여기서 언론인의 자질과 사명은 자명해진다. 첫째로 어느 직업에서도 볼 수 없는 최고의 정직성, 도덕성이 인격의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의 억압이나 금력의 유혹에 굴하지 않는 가운데 흰 것을 희다 말하고 검은 것을 검다 말할 수 있는 도덕적 용기, 진실을 밝히고 진실을 알리는 것을 지상의 보람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복잡하고 다원적이고 혼란스러운 사회현실 속에서 진실을 밝히고 시비를 가리고 정의를 추구하는데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 탐구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학습훈련으로 가능하다기보다는 타고난 기질이기도 하다. 언론에 뜻을 둔 젊은이라면 마땅히 스스로의 적성 여부를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고 겁이 많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 흥미가 없는 성격이라면, 또한 권력, 돈, 사회적 지위에 인생의 목적을 둔 젊은이라면 그런 사람은 아예 언론에 진입할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언론의 필수적 조건은 사물을 그대로 관찰하고 균형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반드시 소설가나 시인의 재주를 요하지 않는다. 언론은 상상력을 토대로 필력을 구사하는 창조의 세계는 아니니까. 그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동시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적극적 활동력이고 뛰어난 집필능력을 뜻한다.


 네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광범위한 인문교육적 배경이다. 흔히 언론인은 “어느 한 분야에 통달해야 하고 모든 분야에 상당해야 한다(Every thing about something, something a bout everything)."고 말한다. 누구나 제한된 연한의 교육을 받고 제한된 수명을 산다. 성취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따라서 언론인은 평생 공부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적어도 한 분야에서 는 자신 있는 전문가이자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전문가에게 물어볼 능력이 있어야 하고 전문가의 말을 알아들을 능력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그것을 쉽고 간결하게 옮겨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언론인은 정치인이나 마찬가지로 누구나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 몇 가지 지적한 대로 엄격한 정신적 자기규제의 인격적 바탕에서 세상을 바로 관찰하고 진실하게 전달하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기량을 갖추어야 한다.


 자유를 사랑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결코 비굴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진실을 추구하고 항상 약자를 돕고 강자를 억누르는 비상한 용기를 갖춘 멋있는 저널리스트. 이 어찌 젊은 사람들이 삶을 불사르면서 몰입할만한 직업이 아닌가. 그러나 거기에 타고난 재주와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현실 언론을 생각할 때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반박할는지도 모르지만, 남을 위해 살겠다는 자아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감히 성직 아닌 성직이라고 말하고 싶다.